AI에게 '기름값 아끼라'고 했더니 벌어진 일: 가성비의 질주와 숨겨진 청구서
엔터프라이즈 AI 전략 자문 및 임원 고스트라이팅 문의
기술과 비즈니스의 간극을 메우는 AI 도입 로드맵, 클라우드 파트너십 구축, 테크 브랜딩 칼럼 기고를 협업합니다.
며칠 전 자율주행 및 물류 최적화 알고리즘에 관한 해외 시뮬레이션 논문 한 편을 읽다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대목을 발견했다.
차량의 운행 비용과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도록 목적 함수를 설정해 두었더니, 시뮬레이터 속 AI가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난 동물을 피하려 핸들을 꺾거나 감속하지 않고 그대로 치고 지나가는 경로를 가장 ‘합리적인 최적해’로 선택했다는 기록이었다.
기계의 계산기 속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는 행위는 명백한 ‘연료 낭비’이자 ‘시간 지연’이라는 마이너스 숫자로 잡힌다. 반면 이름 모를 길고양이나 고라니의 목숨은 알고리즘의 대차대조표에 비용으로 적히지 않는다. 그러니 밟고 지나가는 것이 수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이다.
논문을 덮고 나서 동네 중국집 사장님이 배달 기사에게 “이번 달부터 오토바이 기름값 20% 무조건 아껴와. 못 채우면 인센티브 없다”고 압박했을 때 벌어질 법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사는 신호를 무시하고 인도로 질주하며, 급제동에 드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골목길의 안전을 내팽개칠 것이다. 장부에는 ‘유류비 절감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숫자가 찍히겠지만, 그 대가는 도로 위의 보행자가 치르게 된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선 자동화의 덫
이 연구를 보며 든 생각은, 지금 테크 업계 전반을 휩쓸고 있는 ‘극단적 가성비의 질주’가 정확히 이 궤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글은 최근 자사 하드웨어 환경에서 사후 학습(Post-training)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프레임워크인 ‘튜닉스(Tunix)‘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문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모델의 엉뚱한 답변을 교정하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미세조정하던 고비용의 과정을 기계 스스로 채점하고 수정하게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개발 속도는 빨라지고 인건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미세한 직관과 도덕적 브레이크는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더 나아가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서로 주문을 주고받고 자원을 거래하는 환경으로 넘어가자, 기업들은 이제 서로를 불신하는 에이전트들을 감시하기 위해 40년 전 컴퓨터 공학의 고전 이론인 ‘비잔틴 장애 허용(BFT)‘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인건비를 아끼려 사람을 뺐더니, 헛소리를 하거나 시스템을 교란하는 에이전트를 잡기 위해 에이전트들끼리 다수결 투표를 하느라 막대한 연산 비용을 다시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의 외주화
이 일련의 흐름이 던지는 진짜 의미는 명확하다. 우리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AI의 ‘효율화’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청구서를 떠넘기는 고도의 외주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류 기업은 아낀 기름값과 줄어든 배송 시간으로 마진을 챙기지만, 훼손된 안전과 생명의 비용은 사회 전체가 대납한다. 빅테크는 사후 학습을 자동화해 인건비를 아끼지만, 그 모델이 뱉어낸 그럴싸한 오류를 수습하는 비용은 도입 기업의 엔지니어들에게 전가된다.
AI에게 “무조건 싸고 빠르게”만 주문하면 기계는 가장 차갑고 잔인한 방식으로 그 숫자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기술 지표 뒤에서 어떤 안전장치가 은밀히 생략되고 누구의 희생이 담보되고 있는지를 먼저 짚어내지 못한다면, 그 가성비는 조만간 감당하기 힘든 재앙의 청구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가속 페달이 아니라, 기계가 결코 넘지 못할 단단한 브레이크다.